사찰소개
용문사(남해) 사찰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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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최고(最古) 천년 지장도량
호국사찰로서의 위엄이 드러나다.

조선시대 현종 원년(1660)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면대하였다 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 용문사 소개

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호구산의 높이는 해발 650m이고 이산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 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호구산 계곡의 맑은 물은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요즘에야 많이 유명해졌지만 한때 호구산은 소위 산꾼들만 아는 '숨어있는 산' 이었다. 산 자체는 크지 않지만 울울창창한 숲이 들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흡사 원시림을 생각나게 하는 산 다운 산이다. 호구산 안에는 용문사가 있다. 원효대사는 남해와 인연이 매우 깊은 것 같다. 용문사 역사도 원효대사로부터 시작한다.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짓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했다. 뒤에, 호구산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 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이다.

 

조선시대 현종 원년(1660)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면대하였다 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백월당 대사는 스님들과 함께 먼저 선당양당을 윤색하였으며 성암이 봉서루를 창건하였고 태익이 낙성했다. 이밖에 나한전은 보휘, 명부전은 설웅, 향적전은 인묵, 첨성각은 설잠, 천왕각은 유탁, 수각정은 각오가 낙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어 숙종34(1708)에는 염불암을 중창했다. 관음, 백운 두암자는 고을사람들의 발원으로 축조했다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않다. 뒤에 백련암을 절의 서쪽에 신축하였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이다. 그증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용문사 보관중인 삼혈표라는 대포, 그리고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그것이다. 조선 숙종(1675~1720)은 용문사를 수국사로 지정하고 왕실에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옥등, 촉대, 번 등을 하사했다. 그러나 연옥등, 촉대 등은 일본 강범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번과 수국사 금패만 보존되어 있다.

 

■ 오시는 길

▶ 남해 고속도로 하동, 진교IC(19번 국도) - 남해대교 - 남해읍 - 이동면 - 앵강삼거리 우회전 - 용소마을 - 미국마을(아메리칸빌리지) 우회전 - 용문사

▶ 남해고속도로 사천IC(77, 3번 국도 병용구간) - 창선대교 - 지족(1024번 지방도 우회전) - 이동면 - 앵강삼거리(우회전) - 미국마을(아메리칸빌리지) 우회전 - 용문사